var url1='whateverwelcome.tistory.com'; var url2='whateverwelcome.com'; var online=document.URL; if(online.match(url1)) document.location.href=online.replace(url1,url2); 어려운 한국사 인물로 풀기 - ⑤ 김유신은 왜 말 목을 잘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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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한국사 인물로 풀기 - ⑤ 김유신은 왜 말 목을 잘랐을까?

무엇이든웰컴 2023. 7. 3. 12:52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서 김유신은 '말 목 자른 김유신~♬'으로 소개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질문, "김유신은 왜 말 목을 잘랐어? 무서워."

어려운 한국사 인물로 풀기, 이번 시간에는 김유신에 대해 알아본다.


1. 김유신 생애

김유신(595년 ~ 673년 8월 18일 (음력 7월 1일))은 신라의 화랑의 우두머리였으며 태대각간(太大角干)이었고 신라에 귀순한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통일하고 당나라군을 격퇴시켜 삼국 통일을 이루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신라의 장군이며, 정치가이다.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을 도와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을 보좌하였으며, 진평왕부터 문무왕에 이르는 다섯 명의 왕을 섬겨 신라 정권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하였다. 신라를 포함하여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성신(聖臣)·주석지신(柱石之臣)으로 추앙받았다.

 

2. 김유신 업적

김유신은 가야왕족의 후손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 장수이다. 그는 15세에 화랑(신라 진흥왕 때 인재 등용을 위한 만든 청소년 수련 조직)이 되었고 자신의 누이와 결혼한 김춘추(태종무열왕)와 함께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그는 진골 출신으로 귀족회의의 수뇌인 상대등이 되었으며 선덕여왕, 태종무열왕, 진성여왕, 문무왕 등 4명의 왕을 보필하면서 신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데 진력하였다. 그는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다.

김유신을 기리는 사당은 현재 여러 곳에 산재하는데 어떤 곳에서는 산신 또는 천신으로 기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김유신의 정체성은 무엇보다도 무장으로서 김춘추와 협력해 삼국통일을 이루었다는 데 있다. 채용신이 그린 ‘김유신영정’에는 용맹한 무장으로 이후 흥무대왕에 오른 김유신의 풍채가 위풍당당하게 표현되어 있다.

채용신이 그린 김유신 영정

 

3. 말에게 책임을 물은 김유신

김유신은 화류계 명성이 자자했던 절세미인인 천관이 운영하는 술집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는 천관녀의 미모와 학식에 감탄해 그녀의 집에도 찾아가고,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다. 어느덧 천관녀 집을 찾는 것이 일과가 됐고, 화랑으로서 훈련은 게을리하게 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나는 이미 늙어서 밤낮으로 오직 네가 성장하여 가문을 빛내기만 바라고 있는데 너는 기생집에나 드나들고 있느냐"라며 울면서 그를 책망했다.

김유신은 어머니 말에 크게 뉘우쳐 스스로 다시는 기방에 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루는 김유신이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의 말이 습관적으로 천관의 집으로 갔다. 천관녀는 그를 보자 눈물을 흘리며 반갑게 맞이했다. 하지만 천관녀를 보고 놀라 술이 깬 김유신은 자신의 결심을 헛되게 한 말의 목을 베고, 천관녀를 냉정하게 뿌리쳤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천관녀는 목숨을 끊었고, 훗날 김유신은 예 연인 천관녀를 위해 그녀 집터에 절을 세우고 천관사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