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 url1='whateverwelcome.tistory.com'; var url2='whateverwelcome.com'; var online=document.URL; if(online.match(url1)) document.location.href=online.replace(url1,url2); 어려운 한국사 인물로 풀기 - ⑥ 삼국통일의 주역, 진흥왕

한국사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한국사 인물로 풀기 - ⑥ 삼국통일의 주역, 진흥왕

무엇이든웰컴 2023. 7. 4. 16:10

재위 기간 동안 불교 진흥, 화랑도 창설, 한강 유역 차지로 신라의 삼국 통일 기틀을 마련한 진흥황.

진흥왕의 생애와 주요 업적으로 손꼽는 삼국 통일까지 알아본다.


1. 7살 왕위를 물려받다.

 

진흥왕은 지증왕(智證王)의 손자이자 법흥왕(法興王)의 동생인 갈문왕(葛文王)의 아들로 534년 태어났다.
540년, 법흥왕이 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한 채 죽자, 7세에 즉위했지만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너무 어렸던 진흥왕은 10여년간 어머니인 지소부인에게 실질적인 통치를 맡겼다. 이 기간동안 지소부인은 우산국을 점령한 바 있던 이사부(異斯夫)를 병부령(兵部令), 즉 지금의 국방장관으로 임명해 신라의 병권을 전담시켰고, 이를 통해 권력의 중심을 귀족들의 협의체인 ‘화백 제도’에서 왕에게로 가져왔다.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 지은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興輪寺)를 완성하고, 일반 백성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는 등 불교를 장려했다. 그렇게 어머니가 통치의 기반을 다지는 동안, 청년이 된 진흥왕은 18세가 되던 재위 12년(551), 드디어 친정(親政)을 시작했다.

 

2. 영토 확장과 순수비

 

진흥왕은 전왕들이 다져 놓은 기반 위에서 신라를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그는 전쟁을 통해 영토를 크게 확장한 정복 군주였다. 당시 한반도는 고구려와 백제가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었고,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포함한 중부 지역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한강 유역은 중국과 한반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의 요지로서, 전략적 요충지였다. 

진흥왕은 백제와 군사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고구려를 견제하고 중부 지역으로의 진출을 도모했다. 드디어 551년, 18세의 나이였던 진흥왕은, 백제 성왕(聖王, 재위 523~553)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해 승리를 거두고 한강 상류 지역을 확보했다. 이어 553년에는 백제마저 물리치고 한강 하류 지역까지 차지하여 한강 유역 전체를 신라의 영토로 삼았다. 이에 격분한 백제가 신라를 공격했으나, 554년 관산성전투(管山城戰鬪)에서 신라군이 성왕을 죽이고 대승을 거두어 한반도 중부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다.

이어 562년에는 대가야까지 정복하여 가야 지역을 신라 영토로 삼는데 성공한다. 아울러 동쪽 해안선을 따라 북진하여 지금의 함경남도 함흥 지방까지를 영토에 편입시켰다. 이로써 고구려와 백제의 양강 구도가 형성되어 있던 한반도에서, 신라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올라선다다. 이러한 진흥왕의 영토 확장 업적은 그가 세운 순수비에 잘 나타난다. 순수비는 왕이 순수(왕이 영토 각지를 돌아다니며 천지산천에 제사하고, 방문한 지방의 정치와 민심의 동향을 살피던 행위) 한 것을 기념하고, 왕의 덕과 업적을 찬양하기 위한 글을 새겨 세운 비석을 말한다. 진흥왕은 자신이 정복한 지역에 순수비를 세웠는데, 현재까지 모두 4개가 확인된다(창녕비,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3. 삼국통일의 기반을 만들다.

우리나라의 여러 부족 국가 중에서 강력한 국가로 성장한 고구려, 백제, 신라. 이 세 나라가 서로 경쟁하면서 한반도에 자리 잡아 가던 삼국시대. 삼국시대 때,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세 나라의 싸움은 끊임이 없었다. 고구려 장수왕에게 수도인 한성과 한강유역을 빼앗긴 백제의 성왕은 신라와 동맹을 맺고 이에 맞섰다. 그리하여 백제는 한강유역을 되찾았으나 다시 동맹군이었던 신라의 진흥왕에게 빼앗긴다. 이에 성왕은 신라에 보복하기 위하여 전투를 벌였으나 결국 관산성(충북 옥천)에서 전사한다. 백제의 기세를 꺾고 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의 진흥왕은 함경도의 남부 지방까지 세력을 뻗쳤고, 가야마저 완전히 정복했다. 

신라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고구려와 백제는 여제동맹을 맺고 신라의 위협을 막았다. 백제의 의자왕은 신라를 여러 번 공격하였으나 신라의 김유신과 당나라의 소정방이 이끄는 연합군에게 660년(무열왕7)에 항복한다. 한편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죽은 뒤 귀족간의 세력 다툼으로 나라가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이 틈을 노려 당나라는 북쪽에서 신라는 남쪽에서 고구려를 공격한다. 마침내 평양성은 완전히 포위되고 고구려의 보장왕은 668년(문무왕 8) 항복하고 말았다. 이에 맞서 신라의 문무왕은 당나라와의 전쟁을 시작하여 8년 뒤인 676년에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드디어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